동물자유연대 : [구조]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유기묘 리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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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유기묘 리조 이야기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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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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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파주에서 아픈 길고양이 구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밥을 챙겨주는 길고양이가 등에 큰 상처를 입고 돌아다녀 도와주고 싶은데 잡기가 어렵다는 제보였습니다. 그런데 제보자가 보내온 사진을 보니 보통의 길고양이와는 생김새가 달랐습니다.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러시안 블루라는 품종의 고양이인 듯 했습니다. 사진과 제보 내용을 미루어 추측컨데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뒤 길에서 생활하다 상처를 입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점점 더 상처가 깊어진 듯 했습니다. 

더운 날씨 탓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더욱 심해져 지금은 진물이 흘러내리고 상처 근처에 벌레까지 꼬인다는 제보자의 이야기에 구조를 위해 파주 현장으로 갔습니다. 


고양이가 자주 등장한다는 곳에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차 밑에서 활동가를 바라보는 고양이를 발견했습니다. 

" 넌 또 뭐냥?! "

낯선 활동가의 등장에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차 밑에서 꼼짝도 안하다가 밥도 안먹고 사라져 버립니다. 


일단 밥을 먹으러 오는 장소에 포획틀을 설치하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낯선 사람의 등장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평소 밥을 먹으러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7월의 뙤약볕 밑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다 제보자와 함께 고양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여기저기 아픈 고양이를 찾아 헤매다가 바로 근처에서 웅크리고 저희를 쳐다보는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작전이 노출된 것 같아 포획틀 위치를 녀석의 근처로 옮겨 보았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이제서야 힘겨운 밀당을 끝내고 겨우 구조가 될 것 같은 기대감에 숨을 죽이고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간절한 우리의 마음도 몰라준 채 녀석은 다시 차 밑으로 몸을 숨겨 버렸습니다. 그동안 길에서 어떻게 생활을 해 왔는지 녀석의 조심성과 경계심이 생각보다도 훨씬 심한 듯 했습니다. 게다가 머리도 좋은지 포획틀에 조심스럽게 들어가서는 발판을 밟지 않고 먹이만 먹고 나오는 신공까지 발휘해 제보자와 활동가를 여러번 허탈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 날은 활동가의 완패를 인정하고, 그 다음 한 차례 더 방문했지만 또 다시 포획은 실패했습니다. 
 


세번째 구조 시도 날, 결국 발판을 이용해 포획하는 방법을 포기하고, 수동으로 포획틀의 문을 닫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낚싯줄에 연결한 페트병을 이용해 포획틀 문을 받쳐놓고 녀석이 틀 안으로 들어가면 낚싯줄을 당겨 포획을 할 생각입니다. 



포획틀 근처를 서성이는 고양이 등에 멀리서도 확연하게 눈에 띌 정도로 큰 상처가 보입니다. 몇 개월간 저 상태로 지내면서 얼마나 괴롭고 아팠을지 어서 빨리 구조해 치료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무려 7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녀석은 주춤거리며 포획틀 안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녀석의 몸이 포획틀 안으로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 뒤 재빨리 줄을 당겨 포획틀 문을 닫았습니다. 
 

포획 직후 모습입니다.
발판도 밟지 않고 그렇게 조심했는데 자신이 포획되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든 표정입니다. 여느 길고양이와는 다른 생김새와 하악질 한번 하지 않는 순한 모습을 보며 누군가와 함께 살았던 고양이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드디어 병원으로 이동해 고양이의 상처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생각보다는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하지만, 피부 속이 다 드러나고 온갖 이물질까지 잔뜩 끼어 있는 상처를 짊어지고 산 녀석은 몇달 동안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구조 후 고양이에게 리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짐작했던 것처럼 리조는 원래 동네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던 반려묘라고 합니다. 반려인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평생을 집에서 살아오던 리조가 하루 아침에 길에서 생활하며 겪었을 고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도 심했을 것입니다. 

고양이는 사람이 키우다 밖으로 내보내도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람 손에 길러져 야생성을 잃은 고양이들은 원래 처음부터 길에서 살던 길고양이보다도 더욱 힘든 상황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길고양이들은 추위와 더위, 굶주림, 사고, 질병 등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아갑니다. 더구나 원래 길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유기묘들은 영역 싸움과 먹이 다툼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영역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도로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다른 길고양이와의 싸움 끝에 상처를 입고 죽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떻게든 잘 살겠지''라는 무책임한 생각으로 버려진 고양이는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을 살다 차가운 길 위나 보호소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리조 또한 무작정 길에 내몰린 뒤 그 지역에 살던 길고양이들과의 영역 다툼에 밀려 몇 달 동안 자취를 감췄는데, 결국엔 어디에서도 영역을 확보하지 못했는지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돌아온 리조의 등에는 깊고 큰 상처가 있었습니다. 

리조는 현재 상처가 난 등 피부 일부를 벗기고 염증 치료를 한뒤 봉합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리조가 하루 빨리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댓글


조희경 2014-08-12 19:51 | 삭제

수고했어요..여름에 상처입은 아이들이 가장 걱정은 구더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오랜 전에 동물자유연대 사무실에 버려진 슈나우저에 대한 기억이 늘 떠나지 않아요..
외상은 없었는데 온몸에 구더기가 생겨 약욕을 하며 떨구어 내고 드라이로 털을 말려 구더기가 다 떨어졌으려니...하면 피부속에서 또 스물스물 올라오고, 또 약욕하고 드라이로 말려 이제는 다 떨어졌으려니,,,하면 또 피부속에서 밨으로 기어 올라오고,,,약욕과 뜨거운 드라이 바람을 피해 피부 속으로 파고 들어가 숨어 있던 구더기들...
세상에, 그동안 그러고 어떻게 살았을 지, 얼마나 가렵고 고통스러웠을지, 하다못해 변 마저도 구더기가 쏟아져 나오고.. 우리 품안에 들어왔는데 이틀만에 결국 죽었습니다. 아마도 장기까지 구더기가 파고 들어간 듯...
그 생각에 여름에 상처 입고 돌아다니는 애들은 늘 안타깝습니다.. 리조가 더 고생하기 전에 잡혀줘서 고맙네요...


이경숙 2014-08-13 14:02 | 삭제

고생 많으셨습니다
리조....몸과 맘의 상처
빨리 낫길 바랍니다


최지혜 2014-08-14 00:03 | 삭제

사람에게 저런 상처가 있다면 울고 , 소리치고 난리가 났겠지요...
어쩜 동물들은 ㅠ ㅠ 저리 순하게 태어났는지,,,,,,
리조야 치료잘받고 앞으로는 다치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민수홍 2014-08-15 01:50 | 삭제

행복한 리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