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경기도가 개고기 위생관리를 시작으로 개고기 합법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개고기를 제도권에서 관리하려한다면, 이후 우리 사회가 어떤 것을 부담해야 하는지, 단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식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두 자치단체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식용목적 개 사육사업, 자본 중심/ 기업화로 재편 예고.
개고기합법화로 인해 우리 국민이 떠안아야 할 부담 먼저 집어보자. 돼지산업의 예를 들면, 1998년에서 2007년 동안 농장의 수는 63.6%가 감소하였으나, 사육두수는 27.3%가 증가하였다. 이는 곧 자본잠식에 의해 생계형 소규모 농가는 폐업을 하고 축산농장들이 점차 기업화되고 있다는 설명이 된다.
이것을 식용목적 개 산업에 접목해 유추해볼 때, 그동안 개고기 금지의 절대 장막의 역할을 해온 생계형 종사자들 상당수가 퇴출을 맞고, 개고기가 더욱 산업화되기 위해 자본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개고기가 합법적축산업으로 편입되면 축산관련기금 수혜 자격이 주어짐으로써, 개고기 산업은 대형화되는 기회를 맞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곧 환경오염 및 공장식 축산업에서 극대화되는 인수공통 전염병발생 등의 폐해를 유발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짊어지게 될 것인데, 과연 개 마저도 축산업에 편입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되고 합의에 이르렀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합법화가 개에게도 인도적일 것이라는 주장은 허구이다.
일각에선 합법화가 개를 잔혹행위로부터 보호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폭 60cm 공간에서 평생 동안 새끼만 낳는 암퇘지나, 25Cm의 공간에 2마리가 넣어져 평생 알만 낳다가 생을 마감하는 암탉들은 합법적 경로로 사육되며 도살되고 있다. 이런 사육방식은 매우 비인도적인 축산 방식이라 하여 국제적으로 개선의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 합법화된 동물들조차도 이러한 실정인데, 개고기를 합법화하여 잔혹한 행위를 방지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늑대, 코요테 등을 조상으로 둔 개들은, 주인으로부터 살뜰한 보살핌을 받을수록 충직하고 다정한 성격이 발현되지만, 인간과 정서교감을 나눌 기회가 차단되고 비좁거나 몹시 짧은 줄에 묶여서 사육되는 개들일수록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람이 개에게 물려죽는 사고의 대부분이 이러한 배경이 있다.
결국 개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격리 사육하고, 좁은 면적에서 최대한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개에게는 겨우 몸 추스를 정도의 공간이 제공될 수밖에 없다. 또한 공격성을 제압하기 위해 개를 다루고 죽이는 과정도 결코 인도적일 수가 없다. 때문에 인도적인 관리란 허구에 그칠 것이 자명하다.
위생관리 정책은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위생관리의 치명적 결함은, 현행법상 개고기는 축산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서울시와 경기도의 개고기 위생관리 계획은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질병에 감염된 가축을 식용으로 유통시킬 수 없듯이, 동물에서 얻어진 고기는 원천 관리와 그 추적이 핵심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와 경기도가 위생관리를 강행한다면, 그 결과로 인해 사회적 혼란만 야기한 채, 서울시와 경기도는 농림수산식품부로 책임을 떠넘기게 될 것이다. 허나 농림수산식품부는 국회의원들의 줄기찬 개고기합법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합법화에는 소극적 입장으로 일관해왔다. 단지 ‘습관’이라는 이유로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국내에서의 강한 저항과 복잡한 문제들이 국내외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또한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관장하는 동물보호법에는 개가 인간에게 기여한 점을 인정해 제한적으로나마 실험금지대상에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이것은 향후 동물보호법에서 개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며 발전시킬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볼때, 개를 식용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합법화 시도와 위생관리는 전형적인 졸속 행정이 될 것이다.
형평성도 벗어났다.
두 자치단체의 위생관리계획은 형평성에서도 크게 벗어나, 우리 사회가 과연 민주사회인지 의심조차 하게 한다. 실제로 개를 식용으로 이용하는 사람들과 이를 적극 반대하는 사람들중 개식용 반대의 비율이 점차 증가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점을 볼 때, 단지 먹는 사람들이 더 존중되어야 할 당위성은 없다. ‘개’라는 동물이 식용으로 죽임당하는 것을 정신적으로 견뎌내야 하는 이들의 정신 건강이 국가에서 보호받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개’는 인간 생활에 밀착되어 살며 인간 삶의 질에 여러 방면에서 기여하는 동물이다. 이러한 동물이 식탁에 오르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그 어떤 설득과 변명, 제도화가 상쇄시켜주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개’에 대한 존재 가치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에 귀 기울여 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서울시와 경기도는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