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가라시기에 왔습니다.
사람들이 주는대로 먹고
시키는대로 일하고
사람들이 이제 너희 것 다 내어노라하면 내어주었습니다.
도축장에 들어서면서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눈물 한방울 흘리며 지루함속에 죽음의 의식을 기다리면서도
인간을 원망해본 적 없습니다.
그것이 세상에 놓여준 우리의 운명이려니 했습니다.
묵묵히 자연의 순리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
이제 채 젖도 못뗀 어린 송아지와
스무해를 할아버지 할머니의 벗으로 살아온 누렁이가
함께 땅속으로 들어가야 했을까요?
들어가라 하기에 우리에게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압니다.
두려움도 알고 고통도 알고 억울함도 알고 이별의 슬픔도 압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악악 울지만
우린 단지 묵묵히 눈물만 흘리며 참을뿐입니다.
우리의 두려움도 크지만
우리를 몰아내고 흙을 덮으려는 사람들의 붉은 눈동자가
더 가여울 뿐입니다.
이제 봄이오면
우리의 울부짖음위로 꽃도 피고 새도 날아다니겠지요.
눈뜨고 죽어간 우리의 주검위로
우리를 잊은 시간들이 또 그렇게 흘러
바람불고 비내리고 가을엔 열매조차 맺겠지요.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없도록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십시요.
우리의 들리지 않는 통곡 기억하시고
땅속에 파묻힌 억울한 400만 생명 기억하시고
자연의 꾸짖음에 답하십시오..
갑니다.
집집마다 정들었던 외양간
할머니의 주름진 손
쟁기질하던 논두렁 밭두렁
잠시 쉬어가면 올려다보던 푸르렀던 하늘
모두 두고 갑니다.
누워보지도 못한채
평생 철책속에서 배부르다 새끼만 낳던 돼지도 갑니다.
하지만 인간도 신도 원망 않을 겁니다.
어서 인간들이 어리섞음에서 깨어나
우리의 죽음이 헛되이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다음생에는 우리에게도 이런 슬픈 이별이 없기를
바랄뿐입니다.
(봄이 움트며 땅속에 묻힌 생명들에 대해 이글을 바칩니다)
이경숙 2011-02-26 10:19 | 삭제
아......가슴이 아리네요....ㅠㅠ
조 맘 2011-02-26 07:24 | 삭제
이글 읽으니 눈물 납니다...
강형준 2011-02-26 20:31 | 삭제
나 또한 인간으로써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미안할따름..
참으로..부끄럽습니다.
장지은 2011-02-26 21:26 | 삭제
아.. 항상 동물들은 인간을 사람을 원망해본 적이 없다고 하네요 ㅠ.ㅠ* 정말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다음생에는 이들에게 이런 슬픈 이별이 없기를..
김한이 2011-02-27 00:22 | 삭제
부디, 이 슬픔과 죄책감을 살아가는 내내 갚아나갈수만 있게 " -외과의사봉달희에 나왔던 대사중 일부입니다. ㅠㅠ 미안하다 ............
양지아 2011-02-28 23:53 | 삭제
정말 인간인것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미안하고 미안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