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희망(네이버블로그 澤 님 글 펌)

사랑방

희망(네이버블로그 澤 님 글 펌)

  • 이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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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2.1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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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희망이라고 했니? 희망이 있을꺼냐고 물었니? 난 말이야 희망을 내게서 찾아 아주 힘들고 그럴 땐 나에게서 희망을 찾아. 왜냐고? 난 예전에 지금의 내가 그토록 미워하기도 하고 먹지 말라고 설득하려 무지하게 노력하는 바로 그 개를 먹는 사람이었거든, 그것도 개고기 잘하는 집이 어디 있을까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말이야. 집에 가면 조그마하고 새까만 미니핀 녀석이 한 놈 있긴 했지만 그 애는 내가 좋아하고 정이 들은 그야말로 특별한 개이고, 내가 먹어왔던 개고기의 개는 우리가 보통으로 먹어왔던 소나 돼지처럼 식용을 위해 가축으로 키워지던 것이니 개고기를 먹는데 있어 어떤 거리낌을 느끼거나 가져보질 않았어. 개를 먹는다고 무어라 욕하는 사람들에겐 그래, 그럼 너는 그렇게 살아, 라는 냉소적인 반응으로 일관했고 소, 돼지, 닭은 괜찮나보지? 하며 빈정대었고 먹는 것을 가려먹는 것은 수치이고 무엇이든 잘 먹어야 되는 것이라 생각 했어 그래야 사내다운 것인지 알았지. 동물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겐 정신 나간 것들, 상대할 필요 없는 것들, 세상에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팔자 좋아 개타령만 하는 정신 나간 것들,, 그러곤 했어 그리고 나는 개고기를 음식점의 깨끗하고 이쁘게 생긴 접시나 냄비에 여느 고기와 다르지 않게 슬라이스되어 야채와 함께 디스플레이 되어 나오는 고기만을 접하였기에 사실 개고기를 단순 먹을거리로만 생각 하였지 어떤 동물의 생명체였었다는 느낌은 눈곱만큼도 가지질 않았어. 마치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으면서도 소, 돼지, 닭의 살아 있을 때 모습을 연상 안하 듯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인가, 몇몇 사람들과 남한산성근처에 유별난 개고기집이 있다는데 그 집은 살아있는 개를 손님이 직접 골라 먹을 수 있는 곳이라 하기에 구미가 당기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겨 그곳엘 가게 되었어. 난 정말 거기서 식용견이라는 걸 처음 봤어 물론 그전에도 그 개들과 같은 누렁이들을 보긴 하였지, 그렇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고 특별한 의미를 두고 보질 않아서 그냥 초지에 묶여진 염소나 소처럼 그저 풍경속의 한 물체로 덤덤히 보았던 거야. 아, 그런 기억은 있었구나. 동네 개구쟁이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개에게 까닭 없이 돌팔매질을 하는 것을 보곤 쫓아가서 혼을 내주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이른 적은 있었던 것 같아 그렇지만 그랬음에도 내가 식용견이라는 걸 처음 봤다는 이야기는 오로지 잡아먹히기 위해서 횟집의 수조에 담겨져 있는 광어나 장어, 도미 같은 물고기들처럼 우리에 갇혀져 있는 그런 개는 처음 보았다고 하는 말이지. 그래, 그러고 보니 그런 기억도 있었어,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80년대 초쯤, 나는 어느 광고대행사에 몸담고 있었는데 바로 옆 부서인 영상팀의 최감독이란 분이 양수리에 로케이션 촬영을 며칠 나갔다가 돌아와서 내게 말하길 “윤형, 나 어제 완전히 미쳐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나도 개고기를 먹긴 하지만 글쎄 이 촌놈의 새끼들이 개를 트럭에다 묶어놓고 자갈밭에서 마구 달리는데,,참,,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깨갱거리다가 나중에는 아뭇소리도 못질르고 푸대자루가 되어 퍽퍽대며 끌려다니더니,,, 당연히 벌써 죽었겠지요, 그때서야 차에서 내려 지들끼리 낄낄대며 너덜너덜된 개를 불로 지지고 볶더니 우리 세트쳐논데서 멀지 않은데에다 마을 양아치 같은 새끼들 죄다 모여서 술 퍼먹고 놀고 자빠졌는데 정말 본토박이 녀석들이니 뭐라 하면 촬영에다 땡깡 필것 같아 아뭇소리 못하고 있는데,,,에이 씨벌놈들,,, 윤형, 그거 야만종자들 아뉴? 뭘 먹더라도 꼭 그 지랄 떨며 쳐 먹어야 되나? 에이 개 씨벌놈들,,,“ 정말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개고기를 먹긴 할 때였지만 같이 얼굴을 벌겋게 해대가면서 그 사람들의 야만적이고 잔인한 행위에 대하여 욕을 해댄 적이 있었어. 에고, 미안해,,얘기하다보니 얘기에 취해서 또 딴 데로 갔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어느 놈이 괜찮을까 하며 누렁이들의 울타리 밖에서 오늘 먹을 개를 선택하기 위해 개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기 시작하였는데 개들이 우리의 손길을 피하기 시작하는 거였어. 우리와의 눈길까지도 마주치려는 것을 피하려는 듯 개들의 얼굴은 땅 바닥을 향해있으면서도 두려운 모습으로 치켜뜬 눈동자는 우리의 허리 부분쯤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사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바라보긴 했지만 솔직히 조금은 안쓰럽다 하는 느낌이 들긴 했었어. 개들은 누구랄 것 없이 모두 그들 무리의 속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서로의 틈을 헤집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가 서로를 밀쳐내는 형국을 만들고 있었어. 개들 모두는 가능한 한 우리와 떨어져 안 보이는 멀리로 숨고 싶었지만 그 울타리의 크기는 두어평 정도의 작은 울타리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었지. 그러는 중에 일행 중 우리를 인솔해 데리고 온 사람이 한 누렁이를 가리켰어 농장주인은 곧장 올가미를 들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벌써 낌새를 차리고 온통 몸을 사리고 있는 그 아이의 목에 올가미를 채웠어. 올가미에 묶여진 개는 잠깐 뒷발을 세우며 뒤로 버팅 기는가 싶더니 이내 체념한 듯 올가미 줄을 따라 순순히 끌려 나왔어 그때였어,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린 듯한 그 아이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던 거야 아주 찰나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아이의 눈에서 나는 얼핏 눈물을 보았던 것 같았어 그리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 물기 촉촉이 젖은 눈동자의 고요. 아직도 전혀 잊을 수 없고 그 날 이후로 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말을 건네주고,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었던 그 아이의 마지막 눈동자. 그 후로 세월이 한참을 지난 뒤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개농장을 많이 다녔었어 그런데 말이야 어느 곳, 어느 농장을 가보아도 그 눈동자는 나를 쫓아다니고 있었어. 아무 표정 없이 있는 개를 카메라의 앵글에 담아가지고 집에 와 확인해보면 그 아이의 눈동자가 거기에 있는거야.. 나는 그 눈동자를 그때 처음 만났어.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모두가 둘러앉은 식탁으로 아까 그 누렁이의 고깃덩이가 불에 적당히 그슬리고 삶아진 채 부분 부분이 잘라져 소쿠리에 담겨져 나왔고 식탁 곁에 자리한 주인아주머니의 손에 의해 결대로 잘게 잘게 찢겨지고 있었어. 개고기를 먹기 시작한 이후로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던 것 같았어. 바글바글 끓고 있는 전골냄비속의 고기에 아까 보았던 누렁이의 그 눈동자와 측은해 보이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도시 손이 가질 않아 찬으로 나온 오이와 밑반찬을 안주로 하여 깔짝깔짝 소주만 홀짝거리고 있었는데 일행들의 왜 고기 안 먹느냐는 채근에 마지못해 고기 한 점을 입에 집어놓았었지 그리곤 고기가 목으로 넘어가질 않아 입에서 오물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도저히 참아내지 못할 정도의 역한 냄새와 느낌이 나는 거 같았어. 나는 금방이라도 토악질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입을 손으로 막은 채 급히 방을 나와 뒷마당에 있는 우물가로 달려가서 토해버렸어. 아까 먹었던 오이와 김치등 소주까지 모든 것을 말이야. 그런데 토악질을 하느라고 쪼그려 앉아있던 나의 눈에 내 발밑 우물가 엉성한 시멘트바닥의 움푹하니 골이 진 곳마다 아까 죽은 누렁이의 피가 고여져 있는 것이 내 눈에 보이는 거였어. 난 그때 틀림없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내 목구멍 깊숙이 집어넣어 내 위장 속에 남겨져있었던 모든 것을 토해 대었어. 토하느라고 고통스러워서 눈물이 나고 콧물이 났는지,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누렁이를 나로 인해 죽여 저렇게 그을려져 식탁에 오르게 만들었다는 회한과 자괴로 눈물과 콧물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온통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로 더듬더듬 신음하듯 한 토막 한 토막 힘들게 내 뱉었었어. 미안해..미안해..누렁아..정말 미안해..정말 미안해,,, 난 정말 그날 이후로 개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어. 십년이 훨씬 지난날의 이야기이지만 난 그때까지만 해도 개고기를 먹었던 사람이고 내 즐거움을 위해 사냥을 해봤던 사람이고 낚시 또한 거의 광에 가까울 정도로 즐겨하던 사람이었어. 이 모두가 누군가의 살생을 통해 내 즐거움을 도모하는 행위들이 분명한 것이지. 나는 그러했던 사람이었어. 내가 그러했던 사람이기에 나는 희망을 잃지 않는 거야. 한 사람이 변화되었을 때 그 변화의 날갯짓은 바로 버터플라이 이펙트가 되는 것이야. 그만큼의 세상이 변화가 되는 것이지. 우리는 여기에서 변화의 계기에 대해 잘 살펴보아야 해. 변화의 계기는 사람 수만큼씩이나 다양해 어느 것이 그 길인지는 알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건 있어. 그건, 흑백의 선명함으로 구획을 짓고 세상을 양분시키는 이분법적인 해석이 되어서는 우리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종내에는 우리만의 섬에 갇혀져 세상을 향한 울분과 분노만을 쏟아내고 있는 괴물이 되고 말거라는 것을. 나는 개고기를 먹을 때나, 먹지 않기로 한 지금이나 모두 다 나야.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 변한 것은 찾아보아도 정말 없어. 단 개고기를 안 먹기로 하여 안 먹고 있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쉼 없이 개고기 먹지 말라고 타이르고, 졸라대고, 땡깡 놓는 것 외에는 말이야. 그때의 나도 내였고 지금의 나도 내라는 것을, 지금 내가 하는 이 말의 의미를 말이야 두고두고 곱씹어 생각해 주었으면 해. <출처 : 선영아 사랑해, 마이클럽 www.miclu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