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 나는 탁자에서 의식을 잃은 뒤 깨어보니 내 다리엔 도청장치가…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무차별적인 여성 난자 적출도 애국으로 칭송되는 마당에 실험에 희생당하는 동물의 권리를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은 ‘난자연구의 조세회피 지역’이자 ‘동물실험의 조세회피 지역’이다. 동물실험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고, 생명을 귀히 여기는 가치관은 교육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21>은 세계적 수준에 한참을 못 미치는 한국의 동물실험 현황과 인간의 진보를 위해 혹은 국가·자본의 이익을 위해 실험실에 내몰리는 동물들의 권리를 취재했다. 편집자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
디데이가 다가왔다. 엊그제 하얀 가운이 나를 실험실로 데려가더니 엑스레이를 찍었다. 넓적다리. 두껍고 넓은 넓적다리 때문에 나는 이렇게 생을 마감할 것이다. 며칠 안 돼 하얀 가운이 나를 다시 실험실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곤 친구들과 함께 밀실에 가두고 독가스(이산화탄소) 밸브를 열겠지.
12주 전부터 나의 넓적다리에는 이물감이 있어왔다. 그때 어두운 실험실 안의 은빛 스테인리스 탁자로 끌려간 뒤부터였다. 그날 하얀 가운은 아침부터 나의 고향 친구들 넷을 차례차례 데려갔다. 한 시간이 지나고 돌아온 친구는 고개를 벽에 파묻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그의 넓적다리에 어설프게 꿰매진 자국과 선홍빛 핏자국이 보였다. 내가 마지막이었다. 비린내 나는 탁자에 눕혀지자, 갑자가 쏴 한 기체가 얼굴을 덮었다. 의식을 잃었다. 하얀 가운과 고무 냄새 나는 손, 백열등에 반짝이는 메스의 날을, 난 꿈에서 봤다. 엉덩이에 근육주사가 꽂혔고, 넓적다리에는 리도카인(국소마취액)이 투여됐다. 그리고 ‘앵’ 하는 소리가 났다. 하얀 가운들은 나의 넓적다리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있었다. 모터 소리가 멈추고 뼛가루가 쌓일 즈음, 덜컥덜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구멍에 무언가를 삽입했음이 틀림없다. 나를 감시하는 도청장치일까. 지금도 그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 시간 뒤, 깨어보니 철창 안이었다. 그 뒤 하얀 가운은 하루 두세 번씩 나를 보러 왔다. 나는 내 친구들처럼 얼굴을 벽에 파묻고 하얀 가운을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다. 넓적다리가 시큰했다. 처음엔 움직이지 못했지만 이틀 뒤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옆 친구는 넓적다리가 썩어간다고 했다. 움직이질 못했다. 하얀 가운은 이틀째 꿈쩍하지 않는 옆 친구를 툭툭 건드려 시험해보았다.
친구는 고통스런 목소리로 그날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다. 전기드릴이 그를 깨웠고, 그래서 괴성을 질렀다고 한다. 하얀 가운은 그래도 마취량을 늘리지 않았다고 했다. 마취량을 늘리면 죽기 때문이었다. 대신 3cc 투여했던 근육주사를 1cc 더 투여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날 이후 공격적으로 변했다. 하얀 가운을 보면 우리는 시선을 돌린다. 우리의 몸은 긴장해 공처럼 구부려진다.
나는 안다. 그들은 내 다리의 이물질을 빼곤 용도 폐기할 것임을. 우리 생명권에 대한 유린의 역사는 대대로 구전돼왔다. 고향에서 무조건 살찌워야 했고, 몸무게가 2kg이 되니 이곳으로 보내졌다. 우리 넓적다리에 엑스레이를 찍으면 죽음이 임박했다는 징표라고 했다. 그들은 나와 내 친구들을 가둔 뒤, 독가스로 우리를 사살할 것이다. 그리고 내 다리의 도청장치를 꺼내겠지.
동물실험, 300만 학살의 현장
안락사 원칙도 지켜지지 않은 채 매년 애완동물 수만큼 희생당하는 대한민국
과학의 비윤리성 막기 위해 기관마다 동물실험위 설치하고 3R 원칙 준수해야
▣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동물실험실은 주인공만 다를 뿐 유대인이 학살당한 아우슈비츠와 다르지 않다. 지구인을 납치해 생체실험을 한 뒤, 전자칩을 삽입한 외계인 이야기와도 다르지 않다.
앞의 묘사는 흔히 TIBIA라고 불리는 토끼 넓적다리 실험이다. 토끼 넓적다리 실험은 치과에서 쓰이는 임플란트 재료나 정형외과 치료에 쓰이는 뼈 조형물 실험에 이용된다. 넓적다리에 인공 보형물을 삽입하고 조직의 이상 반응을 지켜보는 시험이다. 12주 뒤 뼈 조직이나 근육이 괴사하면 시험은 실패다. 토끼가 건강하게 깡충깡충 뛸 수 있어야 성공이다.
△ 안락사 대신 심장에 공기를 넣어 죽이고, 안식표 대신 발가락을 자르는 동물실험은 우리 과학의 초상이다. 국립독성연구원의 실험동물 우리. |
밤마다 토끼에 물려죽는 꿈 꾼다
그러나 실험을 마친 토끼는 이미 정상이 아니다. 의료기기 시험기관에서 근무하는 김아무개(29)씨는 “실험 전과 실험 후의 토끼의 행동은 판이하게 다르다”고 말한다. 사람에게 친근하게 대하던 토끼는 사람을 피하고, 벽 쪽으로 얼굴을 파묻는다. 실험 후에도 성격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원을 잘 따르는 토끼도 있지만, 상당수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을 무서워하고 때로는 괴성을 지른다.
TIBIA 시험은 2~2.5kg의 다 큰 토끼를 이용해 진행된다. 사육업체에서 사온 토끼는 3만~9만원. 이 토끼들은 실험동물 사육동에서 1주일 동안 적응기간을 보낸 뒤, 동물실험에 투입된다.
앞의 TIBIA 시험은 세계적인 동물실험 윤리 기준에 맞춰 진행된 것이다. 이 실험의 경우, 실험동물 전문사육업체에서 길러진 표준화된 동물을 구입해, 실험 전에 마취제를 투여해 동물의 아픔을 최소화하고, 인도적인 안락사를 시킨 뒤, 냉동 보관 뒤 전문 폐기업체를 통해 소각시켰다. 그러나 대학 실험실이나 영세업체에선 실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잔인하고 저렴한 방식이 동원된다.
“동물실험 뒤 동물을 안락사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산화탄소 흡입이나 정맥 주사를 놓기 위한 비용이 필요하거든요. 대학 실험실에서는 안락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심장에 공기를 투여하곤 하죠.”
김씨는 실제 토끼의 심장에 공기를 투입해 도살한 적이 있다. 도살 방법은 간단하다. 50㎖짜리 플라스틱 주사기를 토끼의 심장에 찌른 뒤, 손가락으로 찬찬히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50㎖의 공기가 주입된 토끼의 심장은 10분 만에 활동을 멈춘다. 김씨는 “나의 주사 한 방으로 토끼가 괴성을 지르며 경련을 일으키는 걸 학부 과정에서 본 뒤, 밤마다 토끼에게 물려죽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한 해 동물실험에 희생되는 동물은 최소 300만 마리로 추정된다. 국내 인구의 6분의 1에 달하는 수치이고, 300만 마리로 추정되는 애완동물의 수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인식표 없어 발가락 잘라 표시
그런데 이 수치는 정확한 게 아니다. 사실 한국의 동물실험 규모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물실험 관리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서 있기 때문이다. 추정 두수가 산출된 과정을 들어보면 희한하기 그지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산하 국립독성연구원은 2005년 각 기관·기업·대학 연구소와 실험동물 사육·판매·수입업체를 대상으로 실험동물 사용 현황을 조사했다. 그러나 연구기관·기업 등 실험 주체들에게 물어봐 들은 수치를 합해보니 30만 마리가 나왔는데, 실험동물 사육·판매업체가 판 동물은 300만 마리가 나왔다. 300만 마리가 팔렸는데, 30만 마리밖에 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려 10배 차이가 난다.
“일부 연구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동물실험을 했는지조차 계산하지 않는 실정이에요. 그러니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죠. 판매업체가 (세금 문제 때문에) 실제보다 많이 팔았다고 거짓말하지는 않을 테고… 그래서 최소 300만 마리라고 추정하는 거예요.”
황대연 국립독성연구원 동물자원팀 연구관의 말이다. 이처럼 동물실험은 난맥상이다.
동물실험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윤리가 있다. 바로 영국의 과학자 러셀과 버크가 제시한 ‘3R 원칙’이다. 3R이란 동물실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대체(replacement)하고, 그게 불가능할 경우 동물실험 횟수를 줄이고(reduction),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refinement)해야 한다는 대안 원칙이다. 고등동물 대신 하등동물을 써서 동물이 지각할 수 있는 고통을 줄이거나, 통계적 기법이나 새로운 실험환경을 도입해 실험 횟수를 줄이는 방식, 세포·조직 연구로 대신하는 노력 등이 모두 3R 원칙에 따라 행하는 대안 연구다.
그러나 한국 실험실의 상황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윤리적인 실험기준을 제시하고 과잉 실험을 방지하는 독립적인 동물실험위원회가 설치된 곳도 손에 꼽을 정도다. 국립독성연구원이 2005년 조사한 결과, 국내 연구기관 가운데 동물실험위원회를 둔 곳은 전체의 20%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국내의 한 의학연구소에서 면역 실험을 했던 고아무개(31)씨의 말이다.
일선 연구원 90% 실험동물법에 찬성
“실험 대상 마우스에 표식을 해야 하잖아요. 귀에 인식표를 부착하면 되는데, 이마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발가락을 잘라서 표시해요. 오른쪽 엄지발가락부터 자르기 시작하죠. 1번은 엄지발가락이 없는 마우스, 2번은 검지발가락이 없는 마우스, 10번은 발가락이 하나도 없는 마우스이고… 10번이 넘으면 발가락을 두 개씩 잘라 표시하죠.”
고씨는 발가락을 잘리던 하얀 쥐의 절규를 잊지 못한다. 그는 “최소한 연구기관에 동물실험위원회가 설치해 규제장치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며 “위원회가 각종 실험기준에 표준을 제시해야 되고, 무분별하게 동물을 사다 쓰는 과잉 실험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연구기관 가운데 국제실험동물인증협회(AALAC)의 인증을 받은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비영리 국가단체인 AALAC는 실험동물 관리와 실험이 과학적·윤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인증한다. 인증받은 연구소는 매년 실험동물 프로그램을 보고해야 하고, 3년마다 직접 실사를 받는다. 전세계적으로 모두 650개 기관이 AALAC 인증을 받았다. 국내에는 국립독성연구원과 한국화학연구원, 성균관대, 연세대, 삼성생명과학연구소 등 5곳이 전부다. 국내 굴지의 화장품업체나 바이오 벤처도 인증받지 않았다. 국립독성연구원 조정식 동물자원실장은 “AALAC 수준의 과학적 신뢰성 확보와 동물실험 윤리가 체내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시설 등록·신고제를 시행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동물실험 관련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는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이 발의한 실험동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은 △동물실험위원회 의무 설치 △3R 원칙 준수 및 안락사 처리 △동물실험 시설 등록제와 실험동물 공급자 신고제 등을 규정하고 있다. 조 팀장은 “시설 등록제와 신고제가 실시되면, 진입 장벽이 강화되기 때문에 양질의 동물들이 실험에 이용돼 연구 결과의 과학성과 신뢰성이 담보될 것”이라며 “외국 저널에서 동물윤리 기준을 요구하는데, 대다수 연구시설이 이를 충족할 여건을 마련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법안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는 큰 원칙에서 동의하고 있지만, 몇 가지는 정부·학계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실험동물 규제는 보건복지부 주관의 실험동물법에서 나올 게 아니라 실험동물을 보호하는 차원이므로 동물보호법상에 규정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실험동물 연구자에 대한 면허제를 시행하고, 동물실험위원회 구성 방안과 관련해서도 시민단체 인사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는 “기관별 위원회뿐만 아니라 권역별·국가별 동물실험위원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벌 연구소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경우, 기관별 위원회가 독립성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 국립독성연구원에서 사육되는 실험용 오리. 한국에선 한 해 300만 마리의 실험동물이 희생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
큰 그림에서 학계와 식약청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쪽이라면,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 권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를 마친 실험동물법은 올해 상반기에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식약청이 지난 2000년 77개 기관의 연구자들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연구자들 또한 실험동물법과 관련해 적극적인 생명윤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연구원들의 90%는 실험동물법 제정에 찬성하는 의견을 보였다. 특히 각 부처 대표가 참석한 국가실험동물위원회가 신설돼야 한다는 의견에 62%가 찬성했다. 반대한 이들은 찬성의 2분의 1인 32%에 그쳤다. 또 그동안 동물실험위원회 등 기준 미비로 외국 저널로부터 논문을 거부당하거나 데이터를 불신당하는 일이 8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황우석 사태 때 우리는 꿈쩍 않고 있었어요. 국익을 위해 여성 난자를 마구잡이로 적출해 쓴 황우석 연구진을 두둔하는 마당인데, 감히 동물의 생명권을 말할 수 있겠어요?”
이원복 동물보호연합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동물법은 국가 경쟁력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미비한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은 양날의 칼을 가졌다. 과학은 한 인생을 불운에 빠뜨렸던 소아마비의 예방법을 발견했고 한센병을 정복했지만, 20세기 초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르며 대량 학살의 무기로 변신했다. 과학의 비윤리적인 독주를 막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어쩌면 동물을 다루는 인간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 일선 연구원들은 대부분 실험동물법 제정에 찬성한다. 한국과학연구소 연구원들이 약물독성 동태실험을 위해 원숭이에게 신물질을 주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 |
설치류가 전체의 80%
실험동물에는 초파리와 같은 무척추 동물에서부터 마우스와 래트 같은 설치류와 개, 그리고 원숭이와 같은 유인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동물실험은 인간과 멀리 떨어진 동물부터 시작해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동물로 이행한다. 초기 실험 단계에 설치류를 했다면, 그다음은 개에게, 그다음은 영장류를 하면서 차츰 개체 수를 줄여나간다.
설치류는 전체 실험동물 가운데 80%를 차지한다. 10cm 내외의 조그마한 쥐인 마우스와 시궁쥐 크기의 래트, 그리고 기니피그가 사용된다. 설치류는 의약품 독성 실험과 종양 모델로 널리 사용된다. 개와 영장류는 연구원을 알아보는 지능동물이다. 의약품 독성 실험이나 복제 연구 등 이용의 폭이 넓다. 실험을 마친 동물들은 안락사된다. 다만 영장류는 자연사할 때까지 관리하는 게 윤리적 관례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 동물실험은 점차 감소 추세에 있다. 동물보호단체의 로비와 대체실험의 보급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미국의 경우 1986년 1700만~2200만 마리였던 것이 1992년 1400만~2100만 마리로 줄어들었다. 반면 한국은 1987년 12만 마리로 추정되던 규모가 2006년 300만 마리에 다다랐다.
최근 동물실험이 증가하는 분야는 생명공학이다.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을 발현하도록 형질을 바꾼 형질전환 동물실험이 늘고 있다. 형질전환 동물에서 발현시키는 것은 인슐린, 단일 항체, 성장 인자, 백신, 이종 이식(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 이식하는 것)을 위한 조직과 장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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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논문의 거짓말
과학자들은 유명 외국 저널을 통과한 논문을 보며 고개를 내젓는다. 국내에선 동물실험위원회가 없는 연구기관이 상당수인데, 외국 저널에 통과했다는 것은 논문 통과를 위해 있지도 않은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거짓말’을 했을 거라는 뻔한 밑그림이 보이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위원회가 생겨 엄격하게 작동했더라면, 황우석 교수 실험의 여러 진위 논란 중 적어도 복제 소 영롱이 건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울대의 동물실험위원회는 2005년 3월에야 생겼다. 이나마도 국내에선 선구자 축에 든다.
서울대 동물실험위원회는 각 단과대·연구소로부터 실험에 앞서 동물실험계획서를 제출받았다. 계획서에는 동물 수와 실험 내용을 비롯해 동물실험 외의 대체 방안과 고통 감소 방안을 기재하도록 돼 있다. 이 계획서가 통과돼야 실험동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위원회가 실험동물 입수와 관리, 폐사 처분까지 관리하는 구조다. 박재학 동물실험위원장은 “2005년 3월부터 11월까지 680여 건을 심의해 부적절한 32건을 반려해 실험계획서를 다시 제출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반려된 실험계획서를 보면, 개를 이용한 실험이 21건이었고, 돼지를 이용한 실험이 11건이었다.
동물실험위원회가 기관별로 있다 보니,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는 “나도 한 연구기관의 위원이었지만, 한 번도 동물실험 현장을 보지 못했다. 보려고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실패했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지역별 위원회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스웨덴은 다수의 대학을 묶어 6개의 대학권에 지역별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은 연구자와 동물보호단체 인사로 구성되고, 위원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동물실험은 불법으로 간주된다. 동물실험 완전 폐지나 완전 허용 같은 평행선을 달리는 게 아니라 생명윤리에 기반한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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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실험동물의 권리나 복지를 주장하는 철학적 토대는 기존의 인간 중심적 환경·생명윤리를 뛰어넘는다. 인간에게 이익을 주는 것에만 존재 가치를 승인하는 인간 중심적 윤리에 비해 동물권리론은 자연을 구성하는 동물과 같은 생명체의 내재적 가치나 도덕적 지위, 권리를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이들의 철학적 전제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다.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다리의 수나 피부의 털, 뼈 골격의 말단의 차이로 인해 같은 운명에 빠져야 한다고 볼 이유는 불충분하다”는 벤담의 말을 기초로,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존재인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한다.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권리의 옹호>라는 책을 쓴 피터 싱어는 “인간은 살아 있는 것들의 최대 다수를 위한 최대의 선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물들을 일정한 목적을 위해 이용함으로써 얻어진 선이 과연 인간이 그 동물들에게 끼치는 해악을 초과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 권리 운동의 시초라 불릴 수 있는 건 1770년대 영국에서 결성된 ‘동물학대방지협회’였다. 현재 ‘동물의 윤리적 취급을 위한 사람들’(PETA)이 25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로 동물 권리 운동은 발전했다. 급진적인 단체로 알려진 동물해방전선(ALF)은 생물의학 시설, 양모농장 등을 기습하면서 미 연방수사국(FBI)의 국내 테러리스트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서구의 동물 권리 운동은 이윤을 목적으로 동물실험을 행하는 의료자본을 반대하고 생태주의, 채식주의 등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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