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의 한 외딴 야산, 그곳에는 긴 시간 방치된 채 죽음과 맞닿아 있던 개들이 있었습니다. 배가 심하게 부풀어 오른 개 한 마리와 목줄에 묶여 있는 개, 뜬장에 갇혀 있는 개가 혹한 속 몸을 뉠 곳 하나 없이 떨고 있다는 제보였습니다. 특히 배가 부풀어 있던 개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기에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은 지체 없이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순간, 활동가들은 참담한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구조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배가 부풀어 있던 개는 차가운 땅 위에서 이미 숨을 거둔 채 발견되었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병마, 그리고 오랜 방치 속에서 끝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짧은 줄에 묶여 있던 프림이와 뜬장에 갇혀 있던 에피가 있었습니다.
눈발이 날리는 혹한 속, 에피는 녹슨 철망으로 만들어진 뜬장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발을 딛기도 어려웠던 구멍난 뜬장 철망에서 두 발로 서서 바깥을 바라보았습니다. 다행히도 제보자가 먹이를 챙겨주었기에 굶어 죽지는 않았지만, 에피는 극도로 야위어 있었습니다.
현장에는 철망과 나무판자를 뜯고, 또 뜯으며 버티던 시간이 만들어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에피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판자를 물어 뜯었을 것입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무의미한 움직임만을 반복해야 했던 절망적인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요.
온센터에 온 에피는 낯가림과 겁이 있는 편입니다. 어린 강아지일 때부터 뜬장에 갇혀 어떤 경험도 해보지 못했기에 에피의 두려움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에피는 사람의 손길에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고 받아 들여주지만, 행동 하나하나 조심스럽고 머뭇거립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날들을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을지, 그 작은 몸짓만으로도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낯가림이 사그라들고 누군가와 친밀해지고 나면 에피는 사람 껌딱지로 변신합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옆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한없이 애교쟁이가 되는 모습입니다. 두 발로 서서 좋아하는 활동가만을 격하게 반기며 따라다닙니다.
친구들과 뛰어노는 에피
에피의 첫 운동장 산책
운동장에 나가면 또 다른 에피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나아갔었지만, 이제는 넓은 공간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자유롭게 달립니다. 몸을 홱 돌리며 운동장을 재빠르게 가로지르기도 하고, 활동가들과 잡기놀이를 하듯 산책과 놀이를 즐깁니다.
홀로 뜬장에 갇혀 지냈던 에피에게는 만나는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롭습니다. 때로는 겁을 먹기도 하고, 낯설어하거나 조심스러워하기도 합니다. 안전한 돌봄 속에서 에피에게 더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