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에게 혈액이 필요할 때 그 피는 어디에서 올까요? 다른 동물을 살리기 위해 동물병원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물을 ‘공혈 동물’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헌혈’이라는 단어는 자발적인 행위를 의미하지만, ‘공혈 동물’은 혈액 공급을 위한 목적으로 길러지며 채혈에 이용됩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제3차 동물복지종합계획(2025~2029)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반려견은 총 499만 2천 마리, 반려묘는 총 277만 마리로 추정됩니다. 반려동물 수가 늘면서 수술이나 응급 처치에 필요한 혈액 수요도 증가했지만, 한국에는 반려동물 헌혈 문화가 자리 잡지 않아 대부분의 혈액 공급을 공혈 동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일부 동물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공혈 동물을 기르기도 하지만, 국내 동물 혈액의 상당 부분은 민간 기업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 공급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공혈 동물의 열악한 사육 환경으로 논란이 됐던 이 업체. 당시 개 300여 마리와 고양이 60여 마리가 시설에 갇혀 채혈에 이용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뜬 장에서 사육되는 공혈견들에게 사료가 아닌 음식물 쓰레기가 급여되고 있었고, 공혈묘들은 고양이 번식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는 실태가 드러나 시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논란이 커지며 2016년 정부에서 ‘혈액나눔동물의 보호·관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는 권고사항으로 혈액 공급 기관이 자율적으로 따르는 기준에 불과합니다. 2023년에는 ‘동물 혈액 생산·유통 가이드라인’이 마련됐으나 혈액의 안전성과 품질 관리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공혈 동물의 복지를 보장하는 법적 장치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는 만약 공혈 동물이 과도한 채혈을 당하더라도 이를 제한하거나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당 업체는 여전히 국내 동물병원의 주요 혈액 공급원입니다. 당시 지탄받았던 업체는 몇 년 후 사육 환경을 개선했다며 시설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사육 환경이 개선되었더라도, 공혈 동물이 채혈을 위한 삶을 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른 동물을 살리기 위해 피 뽑히는 개와 고양이들. 우리는 ‘반려동물 헌혈’을 통해 이 희생을 막을 수 있습니다. 헌혈하는 반려동물이 많아질수록, 공혈 동물은 줄어듭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일정량의 여분 혈액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혈은 체내 여분의 혈액 일부를 채취하는 과정이며, 혈액은 헌혈 후 자연 재생되어 몇 주 이내에 정상 수준으로 회복됩니다. 또한 헌혈 전에는 수의사가 검진을 통해 동물의 건강 상태를 꼼꼼히 점검합니다. 덕분에 반려동물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미처 몰랐던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반려동물 역시 수혈이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아파 수혈받아야 할 때, 피가 부족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그 순간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 헌혈은 공혈 동물의 고통을 줄이며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을 살리는 일이자, 언젠가 내 반려동물을 지키는 길입니다. 생명을 나누는 선순환, 반려동물 헌혈에 동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