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양*진 학생의 "''동물들의 인간 심판''을 읽고" 입니다.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을 친구에게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담담하게 문제의 핵심을 소개합니다. 잿빛 미래가 상상이 되는 현실에서도 동물들을 위하여 올바른 ''선택'' 을 함으로써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글쓴이의 의지 표명으로 글이 마무리됩니다. 결국 미래가 그리 암울하지는 않을 것이란 희망을 갖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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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미밥
깍두기
시금치 무침
돈가스&타르타르 소스
고구마 샐러드
미역국 』
친구는 급식 표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매점에 가고 싶어 하는 친구를 억지로 이끌고 식당에 갔다. 예상대로 급식은 맛이 없었다. 나물과 국은 싱거웠고 깍두기는 매웠다. 고구마 샐러드가 그나마 먹을 만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돈가스였다. 흰 소스에 젖은 돈가스는 보기만 해도 속이 느글거렸다. 얼마 전이었더라면 주저 없이 버렸을 돈가스다. 그러나 나는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내가 돈가스를 싫어한다는 것을 아는 친구가 의아한 눈치였다. 나는 친구에게 ''동물들의 인간 심판''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한 남자가 정글에서 맨몸으로 깨어나. 당황하는 그의 앞에 말하는 호랑이가 나타나서 그를 법정으로 데려가. 남자는 법정에서 비방과 중상, 학대, 대량 학살이라는 세 가지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돼. 코브라 검사 칼리는 다양한 동물들을 불러내어 증언을 시키고, 개 변호사 필로스는 남자를 변호해 줘.
첫 번째 죄는 비방과 중상이야. 비방과 중상이 뭐냐면, 이런 말들이야. 돼지처럼 먹는다, 벌레만도 못하다, 개 같다.... 어때, 익숙하지? 이 말들이 뭐가 잘못인지 잘 모르겠다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을 떠올려 봐. 누군가 이 속담을 쓰면 화가 나겠지. 성차별적인 속담이니까. 하지만 옛날에는 이 속담이 널리 쓰였어. 지금처럼 속담이 쓰이지 않게 된 것은 피해자들의 꾸준한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비인간 동물들은 목소리를 낼 능력이 없어. 너는 어떻게 생각해? 고통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를 소통하지 못한다고 해서 차별하는 게 정당할까? 비방과 중상이라는 죄목에서뿐만 아니라, 인류가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한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야. 그리고 내 대답은 ''아니''야.
두 번째 죄는 학대야. 동물 학대하면 개나 고양이, 반려동물이 먼저 떠오르지 않니? 나는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인데, 돌이켜보니 개나 고양이를 구출하는 장면은 자주 나와도 돼지나 닭을 구출한 적은 없더라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온갖 끔찍한 학대에 대해 알게 되었어. 특히 토끼의 눈에 오븐 세정제를 넣어 실험한다는 이야기는 믿기 힘들 정도였지. 혹시 책이 오래전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에 자료도 찾아보았어. 그런데 2016년 실험동물이 280만 마리라고 해. 더군다나 공장식 축산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대. 이제 돼지 장브누아르 부인의 증언을 요약해서 들려줄게. 참고로 부인은 아주 우아한 멋쟁이셔. "나는 태어나자마자 거세를 당했습니다. 육질이란 것을 위해 비참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도살장에 끌려가기 직전까지 쭉 갇혀 살았습니다.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좁은 우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먹고, 먹는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도살을 당하기 직전에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 보았던 참상은 정말...." 증언을 들으니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명언이 떠올랐어. 이 말의 뜻은 너도 알다시피 자기 이익만을 위하는 어리석은 사람보다는 풍족하지 못하더라도 지각 있는 사람이 낫다는 뜻이야. 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고통스러워하는 동물들을 모른척하면 배부른 돼지보다 부족한 배부른 인간이 되겠지. 돼지는 적어도 다른 종을 잔인하게 사육하지는 않으니까. 참, 얼마 전에 같이 갔던 김치찌개 집 기억나? 그 식당 벽면에 웃는 돼지가 그려져 있었잖아. 그림 속의 돼지는 웃고 있었지만, 내가 먹은 돈가스는 럭비공도 나물 무침도 아니야. 울 줄 아는 생명의 살점이지. 당장 채식을 하는 건 힘들어도 맛이 없다고 어떻게 버릴 수 있겠어.
마지막 죄가 남았어. 맞아, 대량 학살. 대량 학살의 종말은 멸종이야. 내가 말하는 멸종은 단일 종의 멸종이 아니야. 미꾸라지는 미꾸라지끼리만 양식하면 활력을 잃어 죽곤 해. 하지만 천적인 메기를 함께 양식하면 도망쳐다니느라 오히려 생기가 솟아나서 쉽게 죽지 않아. 신기하지? 만약 먼 옛날에 메기가 멸종했다면 미꾸라지도 멸종했을지도 몰라. 이렇게 생태계는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균형 있게 짜여있어. 거미줄은 재해에 찢어지기도 하지. 그 재해가 때로, 아니 자주 인간이 되기도 해. 늑대 브랑코의 증언을 요약해서 들려줄게. 늑대는 일부일처제와 뛰어난 사교성이 특징이야. "인간들은 우리의 숲에 쳐들어와 파괴를 일삼았다. 그 바람에 숲속에 살던 동물들은 모두 떠나거나 죽었다. 우리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인간들에게 붙잡힌 양을 공격해야 했다. 그러자 인간들은 독을 타고, 올가미를 놓고, 총을 들고 늑대 무리를 공격했다. 내 가족과 친구들은 무참히 죽어 나갔다." 바우어새도 브랑코처럼 숲에 사는 동물 중 하나야. 숲 깊은 곳으로 점점 파고드는 밀렵꾼들 때문에 바우어새는 ''드드드드''하고 기계톱 소리를 흉내 내며 울고 있어. 아프리카코끼리의 수는 100년도 안 되는 새에 90%가 줄었어. 코끼리들이 적을 무찌를 때 쓰는 상아를 조각해서 장식품으로 만들기 위함이야. 코뿔소의 수는 10년 전의 5%로 줄었어. 코뿔소의 뿔이 몸에 좋다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야. 사례를 전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재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지?
자, 드디어 부엉이 판사 솔로몬의 판결 차례야. 그가 남자, 즉 인간에게 내린 판결은.... 나는 이야기를 그치고 시계를 보았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아쉽지만 솔로몬의 판결은 친구의 상상에 맡기고, 교실로 돌아가 공부를 해야 했다. 공부하는 이유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의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이때껏 최첨단 기계와 인공지능과 질병에서의 승리를 이뤄낸 미래를 그려왔으며, 앞으로도 그려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또 하나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잿빛 대기와 교과서로 배우는 코끼리와 새가 내는 기계음으로 가득한 미래다. 그러한 미래의 이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론도 항소도 아니다.
학교가 끝났다. 나는 친구와 만나서 번화가를 구경했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많은 가게 중에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 가게에 들어갔다. 쇼핑을 마친 우리는 저녁 메뉴를 골랐다. 고소한 파전과 야채 김밥을 먹었다. 주말에 동물복지센터에서 자원봉사하기로 친구와 약속하고 헤어졌다.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렸다. 동물 복지 인증을 받은 우유와 달걀을 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초코가 뛰어나와 나를 반긴다. 그러한 미래의 이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론도 항소도 아니다. 소소하고 소중한 변화의 실행이다.